"돈 벌 수 있는 건 다 했다"…산골 출신 청년의 '반전 스토리' [최형창의 中企 인사이드]

입력 2024-02-05 10:38   수정 2024-02-05 11:16


1998년, 전북 부안 산골 출신의 스물다섯살 청년이 광주에 정착했다. 손에 쥔 건 단돈 6만5000원. 할 줄 아는 건 운전뿐이어서 택시회사에 들어갔다. 택시기사, 가스통 배달, 족발집, 옷 장사 등 돈을 벌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광주 한 공장에 인력관리 담당자로 취직했다. 4년쯤 경험을 쌓은 뒤 2011년, 마침내 직접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불과 10여년 만에 상장사 2개를 포함해 계열사 5개를 둔 매출 1조원대 그룹사로 키워냈다.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중견기업 DH글로벌 이정권 회장이다.
삼성전자 냉장고 OEM으로 사세 커져
DH글로벌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과 주문자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가전을 만든다. 최대고객은 삼성전자다. DH글로벌은 2013년 위니아만도 뚜껑식 김치냉장고를 OEM생산하면서 시장에 명함을 내밀었고, 이듬해 삼성전자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사세가 커졌다. 이후 삼성전자 에어드레서, 비스포크 냉장고 등을 잇따라 만들면서 연매출 약 3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5일 광주광역시 첨단산업단지 DH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남들이 안 하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면서 사업을 했다”며 “부품사는 많지만,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많지 않아 역발상으로 완제품 제조 시장에 도전했다”고 떠올렸다. 도박에 가까운 도전은 성공했다. 국내 생산기지들이 해외로 이전하며 생긴 생산설비 공백을 이 회장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이 회장은 OEM·ODM에 그치지 않고 식당용냉장고(쇼케이스), 소주냉장고, 제빙기 등을 자체 브랜드인 ‘스테닉(STENIQ)’ 이름을 달고 국내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 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펼치고 있지만 근로자 근무환경 만큼은 여느 대기업 못지 않게 꾸미고 있다. 이 회장은 “과거 공장에서 일했을 때 느낀 바가 있어서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가장 신경쓰고, 구내 식당을 집밥처럼 최대한 맛있고 정성스럽게 제공한다”며 “회사에 공원을 조성했고, 휴게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직원들이 일과 휴식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코스닥 상장 자동차 부품사 잇따라 인수
가전 사업으로 이름을 떨치던 이 회장은 최근 자동차 부품업계로 보폭을 옮기고 있다. 2022년 코스닥 상장 자동차 전장기업 대성엘텍, 지난해 연말에는 코스닥 상장 스티어링휠(핸들) 제조기업 대유에이피를 인수해 사명을 DH오토웨어와 DH오토리드로 바꿨다. 각각 연매출 약 4000억원과 2300억원을 기록하는 알짜 기업들이다. 특히 오토웨어는 인수 이듬해 흑자로 전환했다. 이 회장은 “가전사업으로는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자동차 산업이 커지는 만큼 이 분야 투자를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는 시간이 갈수록 또 하나의 가전이 되고 있다”며 “자동차 전장 등 소프트웨어 분야 연구개발에 힘을 싣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DH오토웨어와 DH오토리드 사업을 연계해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회장은 “전장과 핸들을 붙여 묶음 영업하면 경쟁력을 더 갖추게 된다”며 “오는 7월 오토리드의 멕시코 공장이 완공되는 만큼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로 고객을 더 확대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올해 그룹 매출 1조2000억원, 영업이익 400억원대를 목표로 잡았다”며 “안정적인 수익을 기반으로 100년 기업 기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광주=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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